아티스트 소개
유덕화(Andy Lau)는 1961년 9월 27일 홍콩 신계 다푸의 타이항촌에서 태어난 홍콩의 남성 배우이자 가수, 영화 프로듀서로, 흔히 "華仔"라고 불린다. 학창 시절 사용한 이름은 劉福榮이었으며, "유덕화"가 사실 본명이다. 다이아몬드 힐의 판잣집 밀집 지역에서 자랐고 집이 화재를 겪기도 했다. 어릴 때는 일찍 일어나 아버지의 잡화점 문을 여는 일을 도왔으며, 가게의 메뉴판을 쓰면서 붓글씨를 익혔다. 산포콩의 可立中學에 다닐 때 연극부에 들어가 극본을 맡았다.
유덕화가 연예계에 입문한 출발점은 TVB였다. 1980년 중등학교 6학년 때 훗날 감독이 되기 위해 TVB 제10기 연예인 훈련반에 지원했으며, 동기생으로 梁家輝, 戚美珍, 吳家麗 등이 있었고 1981년 졸업한 뒤 TVB와 계약했다. 곧 주연을 맡을 기회를 얻어 1982년 드라마 《獵鷹》에서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잠입 경찰을 연기했고, 이듬해에는 陳玉蓮과 함께 《神鵰俠侶》에 출연해 楊過를 연기했으며 최고 시청률은 62포인트에 달했다. 이후 TVB가 5년 재계약을 제안했지만 유덕화는 계약 기간이 너무 길다고 여겼고 영화로 진출할 뜻도 있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덕화가 출연한 첫 영화는 《彩雲曲》이었으며, 이후 許鞍華가 1982년 연출한 《投奔怒海》에 출연했다. 작품 속 베트남 청년 역은 원래 周潤發을 염두에 두었으나, 周潤發은 정중히 거절하고 당시 아직 신인이던 유덕화를 추천했다. 許鞍華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이 영화가 타이완에서 개봉될 수 없다는 점이 이미 확정돼 있었고, 周潤發은 타이완 시장을 고려해 출연을 포기했다. 유덕화는 자서전에서 출연을 결정하기 전 周潤發에게 이것이 자신의 타이완 시장에 영향을 미칠지를 특별히 물었고, 周潤發은 "지금 너는 어디에도 시장이 없어. 찍어!"라고 답했다고 썼다.
유덕화는 1988년부터 활동의 중심을 TV에서 영화로 옮기며 다작기에 들어섰다. am730의 회고에 따르면 1988년부터 1992년까지 5년 동안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으며, 대부분 정이 많고 의리를 중시하는 강호의 인물이었다. 1988년 王家衛의 영화 데뷔작 《旺角卡門》에 출연해 처음으로 홍콩영화금상장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90년작 《天若有情》에서 유덕화가 연기한 華Dee가 예복을 입고 흰 웨딩드레스를 걸친 Jojo(吳倩蓮)를 태운 채 밤의 홍콩섬을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장면을 홍콩영화자료관은 "줄곧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됐다"고 표현했다.
유덕화는 1985년 가요계에 진출해 첫 솔로 앨범 《只知道此刻愛你》를 발표했고, 1987년 EMI로 옮긴 뒤 1993년 워너 뮤직에 합류했다.
유덕화는 장학우, 여명, 곽부성과 함께 1990년대에 "4대 천왕"으로 불렸다.
이 호칭은 1992년 중반 무렵 등장했으며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东方日报》가 "침상 앞에는 유덕화, 장학우인가 의심했네. 머리를 들어 여명을 보고, 머리를 숙여 곽부성을 보네"라는 익살시를 실었다는 것이다. 이후 張耀榮은 네 사람을 통틀어 "4대 천왕"이라고 불렀고, 이 호칭은 대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유덕화는 작사도 하며 2003년 곡 〈如果有一天〉은 작사와 작곡을 모두 맡았다. 푸젠일보(福建日報)의 2020년 보도에 따르면 유덕화는 줄곧 프롬프터를 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공연 전에는 반드시 2~3개월 동안 연습해 다음 가사가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을 때까지 익힌다고 솔직히 밝혔다.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유덕화는 "여러분이 여전히 제가 고생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위해 계속 고생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杜琪峯과의 협업은 유덕화의 연기 영역을 바꾸었다. am730의 회고에 따르면 초기 영화의 유덕화는 "멋지고, 영웅적이며, 잘생긴" 우상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해 흔히 "너무 유덕화다운" 연기를 한다는 인상을 주었고, 杜琪峯을 만난 뒤에야 우상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시나(Sina)의 2004년 보도는 杜琪峯의 평가를 "華仔는 다른 사람에게 아주 잘 맞춰 주는 역할을 연기하는 데 능하다…… 자신의 배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이것이 그가 끊임없이 발전하는 훌륭한 점이다"라고 인용했다. 두 사람이 함께한 《暗戰》은 1999년 개봉해 유덕화에게 첫 홍콩영화금상장 남우주연상을 안겼고, 杜琪峯이 공동 연출한 《大隻佬》(2003)로 유덕화는 2004년 이 상을 다시 받았다.
유덕화와 梁朝偉는 2002년작 《無間道》에서 각각 劉健明과 陳永仁을 연기했다. HK01의 회고에 따르면 이 영화는 홍콩에서 5,500만 홍콩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려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했고 홍콩영화금상장에서 7개 상을 받았다. 2006년 미국 영화사가 《The Departed》로 리메이크했으며, 이 작품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4개 상을 받았다.
許鞍華와의 협업은 《投奔怒海》에서 시작됐고, 오랜 세월 뒤 《桃姐》에서 다시 손잡았다. 유덕화는 許鞍華가 자신을 배역에 온전히 몰입하게 해 주므로 연기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모두 감독에게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유덕화는 《桃姐》로 홍콩영화금상장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無間道III終極無間》과 《桃姐》로 타이완 금마장 남우주연상도 받았다.
유덕화는 영화에 투자하고 제작도 하면서 한 차례 부침을 겪었다. 1991년 직접 天幕製作을 설립했고, 첫 영화 《九一神鵰俠侶》는 홍콩에서 2,000만 홍콩달러가 넘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HK01의 인물 기사에 따르면 天幕製作은 이후 파산했고 유덕화는 한때 빚더미에 올랐다. 1997년에는 陳果가 연출한 독립영화 《香港製造》에 투자하고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불과 50만 홍콩달러의 제작비와 5명의 스태프로 완성돼 홍콩영화금상장 등 여러 상을 받았다.
每日經濟新聞(National Business Daily)의 보도에 따르면 유덕화는 빚을 모두 갚은 뒤 2002년 映藝娛樂을 설립해 저예산 영화를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고 신인 감독 발굴에 중점을 두었으며, 2005년 시작한 "亚洲新星导" 프로젝트는 젊은 감독들에게 영화 제작 기회를 제공했다. 映藝娛樂이 투자한 영화에는 宁浩의 《疯狂的石头》(2006)와 郭子健과 鄭思傑의 《打擂台》(2010)가 있으며, "亚洲新星导" 2기의 刘娟은 감독 데뷔작 《初恋未满》으로 제16회 상하이 국제영화제 아시아 신인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유덕화는 자선 및 공공 분야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다. 2010년 중국장애인복지기금회 이사로 임명돼 부이사장을 맡았고, 2013년에는 香港殘疾人奧委會暨傷殘人士體育協會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2004년 유덕화에게 영예훈장을 수여했고, 2008년 비관수 태평신사로 임명했으며, 2016년에는 동자형성장을 수여했다. HK01은 동자형성장을 받은 유덕화가 "홍콩은 제 집이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제 본분입니다"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유덕화의 영화로는 梁朝偉와 21년 만에 다시 함께한 《金手指》와 宁浩가 연출해 2024년 춘제 시즌에 개봉한 《红毯先生》이 있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열린 《今天…is the Day》 콘서트 투어는 홍콩 콜리세움을 마지막 공연지로 삼았으며, 공연은 이후 블루레이와 2장짜리 CD로 출시됐다. 香港文匯報(Wen Wei Po)의 보도에 따르면 香港浸會大學은 2026년 8월 10일 전문적 성취와 사회 공익에 대한 공헌을 기려 유덕화에게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2026년 9월 보도는 유덕화가 같은 해 12월 18일부터 훙함의 홍콩 콜리세움에서 20회 공연을 연다고 전했다.
개요
- 출생일
- 1961년 9월 27일65세
- 출생지
- 다푸구 · 홍콩
- 활동 시작
- 연습생 / 양성 과정 · 1980년
- 활동 기간
- 1980년~현재46년
- 성별
- 남성
- 다른 이름
- 刘德华, 华仔, 华神, Andy, 劉德華
- 악기
- 보컬